F.A.

3 Dots

▪ 마이애미 해변가에서 막을 올린 <미켈란젤로: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는 AI와 AR 기술을 활용해 거장의 예술을 대리석이 아닌 빛과 소리, 그리고 몸으로 되살린 관객 참여형 전시다. 프로젝션 맵핑, 사운드 디자인, 무대 연출, 인터랙티브 요소 모두가 정교하게 어우러져 미켈란젤로의 복잡한 선과 서사를 온몸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시켰다.

▪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은 클림트의 <키스>를 1만 개의 NFT로 분할해 디지털 소유권을 발행했다. 단순 수익 창출을 넘어 예술의 소유 개념을 새롭게 정립했단 점에서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대적 선언이자 미술관의 혁신이라는 평을 받았다.

▪ 프랑스 파리의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는 컬처스페이스의 혁신적인 비전 아래, 360도 빛과 영상+음악이 더 해진 미디어아트로 반 고흐, 클림트, 르누아르, 가우디, 어린 왕자 등 시대의 명작들을 생동감 있게 되살려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평일 오후임에도 뮷즈 팝업 스토어 앞에는 조용히 늘어선 행렬이 있다. 인기 카페의 오픈런을 연상시키지만 이들이 기다리는 건 라테 한 잔이 아닌 한글 자음이 새겨진 노트, 고대 토기 문양을 입은 머그잔, 유리 진열대 속 반짝이는 굿즈 등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에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감각을 더한 뮷즈(MU:DS)는 전통의 질감을 담아내면서도 색감과 형태를 철저히 지금의 언어로 번역했다. 그래서인지 SNS 피드 속 뮷즈 아이템들은 “문화재”보단 “스타일”에 가까운 존재로 소비된다.

 

한때 박물관 기념품은 여행의 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 하나를 위해 기꺼이 길을 나서는 시대가 열렸다. 이 변화는 단순한 굿즈 열풍이 아니다. 젊은 세대가 더 이상 문화유산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손에 쥐고, 일상에서 쓰고, 디지털 공간에서 재배치한다는 데 열쇠가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 방식은 익숙한 전통을 낯설게 만들고 낯선 전통을 친밀하게 만든다.

 

이런 현상은 해외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고대 유럽 조각이 스트리트 패션에 박히고 르네상스 거장의 벽화가 몰입형 미디어아트로 펼쳐진다. 전통은 더 이상 박물관 유리 벽 안에 갇혀 있지 않고 빛과 사운드, 스니커즈와 티셔츠, 혹은 한 장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속에서 다시 숨 쉰다. 젊은 세대에게 헤리티지는 과거의 산물이 아닌 지금의 취향 자산이 된 셈이다. 그리고 그 취향은 물리적·디지털 경계를 넘나들며 재가공된다. 고전 회화는 새로운 스펙트럼의 조명 아래 색을 달리하고, 박물관 로고는 패션 브랜드의 레터링처럼 기능한다. 이 흐름의 본질은 “유산의 현대화”다. 오랜 시간 쌓인 이야기가 지금의 감각과 만나며 새로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전통은 더 이상 묵직하게만 느껴지는 무엇이 아니다. 손에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고 때로는 이야기를 완성하는 가장 멋진 배경이 된다. MZ세대는 그 안에서 과거를 소비하는 동시에 미래의 전통을 설계하는 중이다.

<미켈란젤로: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 중 시스티나 예배당 © Secret MIAMI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미술관이 발행한 클림트 <The Kiss> NFT © Ouriel Morgensztern / Belvedere, Vienna

미켈란젤로의 부활 <Michelangelo: Immersive Experience>

2025년 봄, 플로리다 햇살이 쏟아지는 마이애미 비치 한복판에서 멈춰 있던 르네상스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미켈란젤로: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Michelangelo: Immersive Experience)> 이 AI 주도 몰입형 전시는 르네상스 거장의 예술을 대리석이 아닌 “빛과 소리와 몸”으로 되살려냈다.

 

이곳에는 전통적인 미술관에서처럼 조용히 서서 작품을 바라보는 풍경이 없었다. 대신 거장의 시선 속으로 몸을 던지듯 걸어 들어가는 관객들이 등장한다. 그 위로 눈앞까지 내려앉는 천장 프레스코의 곡선, 발 아래로 번져 흐르는 가상의 대리석,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잇는 긴 터널이 이어진다. AI 음성 가이드는 관객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속삭이듯 설명을 이어가고, AR(증강현실)은 미켈란젤로의 손끝에서만 가능했던 세밀한 붓질과 조각의 숨결을 눈앞에 소환한다. 그래서인지 마이애미의 이 공간은 전시라기보다 거대한 무대에 가까웠다. 관객은 그 무대 위를 걷는 배우가 되었고 빛은 조명이, 음악은 대사가 되었다. 빛이 움직임을 감싸고 그림자가 호흡을 만들며 공간 전체가 살아 있는 듯 반응했다. 그렇게 <미켈란젤로: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는 관객을 단순한 감상자에서 창조의 공범으로 탈바꿈시켰다. 전시는 명확한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1. The David: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다비드〉가 실물 크기로 눈앞에 선다. 대리석의 질감 하나하나, 근육의 긴장선까지 정밀하게 재현된 이 조각 앞에 서자 몸과 마음이 동시에 조여든다. 자연스레 다비드의 손과 눈빛으로 시선이 닿는 순간 관객은 르네상스 피렌체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2. Sistine Chapel: 고개를 들면 360도 프로젝션이 사방을 감싼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 프레스코가 거대한 빛의 돔이 되어 펼쳐지고 <천지창조>의 손끝이 머리 위에서 천천히 다가온다. 벽과 천장이 구분되지 않는 이 몰입형 공간에서는 관객이 프레스코의 일부가 된다.

 

3. The Creative Lab: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크리에이티브 랩에 들어서면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다. 터치스크린과 AR 도구를 활용해 미켈란젤로의 스타일을 재해석하거나 가상 대리석 위에 직접 선을 긋는다. 스스로 만든 작품이 즉석에서 대형 스크린에 투사되며 거장과 함께 창조하는 특별한 경험이 남는다.

 

특히 The David에서 재현된 <다비드>는 대리석 원형의 질감을 만질 수 없지만 그 시선과 형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프로젝션 맵핑, 사운드 디자인, 무대 연출, 인터랙티브 요소 모두가 정교하게 결합됐다. 관객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하는 AI와 조명, 공간을 감싸는 음악이 미켈란젤로의 붓질과 조각을 살아 움직이는 예술로 바꾸어 놓았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프리미어 익시비션스 그룹(Premier Exhibitions Group)의 큐레이터 조세핀 보도그(Josephine Bodogh)와 요한나 구트만(Johanna Guttmann)은 “고전 미술을 모두에게 접근 가능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이들은 유럽 미술과 미국 관객을 잇는 다수의 전시를 성공적으로 기획한 베테랑 큐레이터다. 공식 소개에 따르면 “예술을 더 매력적이고 포용적이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헤리티지(heritage)를 어떻게 현대화할지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이들의 선언은 전통을 엄숙한 틀로부터 분리해 첨단 기술과 대중 참여를 통해 살아 숨 쉬는 문화로 재탄생시키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홍보 문구조차 예술처럼 감각적이다. “천국과 지옥의 터널을 지나 시스티나의 천장에 도달하라(The David – Monumental and Intimate)”, “다비드의 시선과 마주할 것” 같은 문장들은 오감을 깨우며 인스타그램 세대를 정확히 겨냥한다. 전시장 곳곳에 마련된 사진 명소들은 방문객들이 자신의 경험을 즉시 디지털 세계로 옮겨가도록 초대한다.

 

전통 미술관이 품어온 침묵과 권위는 젊은 세대에게 늘 높고 견고한 장벽이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이머시브 익스피리언스>는 그 벽을 허물었다. 시각과 청각, 몸의 감각까지 한꺼번에 자극하는 멀티센서리 경험 속에서 미켈란젤로의 복잡한 선과 서사는 이제 “느끼고 만질 수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가 국제적 문화 허브 마이애미의 심장부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예술의 상업성(commerciality)과 문화성(cultural value)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는 무대, 그 위에서 고전은 새롭게 호흡한다. 이것은 단지 전시가 아니라 시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하나의 문화적 선언이다.

궁전에서 내 손으로 : 클림트 <키스>의  NFT 프로젝트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Belvedere Palace)은 18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을 상징하기 위해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걸작으로 꼽힌다. 오이겐 폰 사보이 장군(General Eugen von Savoyen)이 세운 이 궁전은 오스트리아 독립 회복의 역사적 현장이자 현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300년의 역사를 품은 벨베데레 궁전이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혁신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바로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The Kiss)>를 디지털 NFT(대체불가토큰, Non-Fungible Token) 10,000개의 고유 조각으로 쪼개 발행한 프로젝트다.

 

2023년 발렌타인데이에 공개된 이 대담한 시도는 전통 미술관과 첨단 기술의 만남을 상징한다. 벨베데레 미술관은 <키스>를 가로 100×세로 100 총 1만 개 NFT 타일로 분할해 각각을 독립된 디지털 작품으로 만들었다. 단순 복제가 아닌, 각각 고유한 디지털 소유권을 부여해 “디지털 자산”으로 소유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벨베데레 미술관과 NFT 스타트업 아르테큐(Artechyu)가 협업해 선보인 이 프로젝트는 출시 직후 약 440만 달러(USD)의 수익을 올렸다. 조각당 가격은 약 1,850유로(한화 약 260만 원)에 달했다. 판매 수익 전액은 제2의 클림트를 발굴하는 미술 교육 프로그램에 재투자된다.

 

이 프로젝트가 혁신적인 이유는 단순히 수익을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의 소유 개념을 완전히 새롭게 정립했다는 점이다. NFT 소유자들은 벨베데레 미술관이 운영하는 전용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으며 특별한 이벤트 초대와 온라인 예술 체험 기회도 얻었다. 특히 구매자 2,600명 중 1,800명이 해외 팬이란 사실은 이 프로젝트가 글로벌 디지털 아트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모범 사례가 되었다는 점을 증명한다. 현실과 가상 사이를 마법처럼 연결한 점이 큰 호응을 얻은 셈이다.

 

벨베데레 미술관 경영 디렉터 볼프강 베르그만(Wolfgang Bergmann)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적으로 보수적인 미술관에 혁신이 필요했습니다.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해 NFT를 도입했고, 디지털 시대 문화기관으로서 메타버스 시대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말처럼 벨베데레 미술관은 전통적인 문화유산 공간이 현대 디지털 문화와 융합해 포스트모던 미술관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었다.

 

NFT 프로젝트의 성공을 바탕으로 벨베데레는 클림트 <키스>를 소재로 한 다양한 굿즈 및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하드웨어 지갑 제조사 Ledger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The Kiss 한정판 Ledger Stax 지갑이 있다. <키스> 이미지를 담은 이 지갑은 단 50개만 한정 제작되어 디지털 자산이 물리적 오브제로 확장된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2023년 국내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클림트 <키스>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금빛 곡선과 자연 형태, 첨단 디지털 프린팅 기술이 만나 지속가능한 하이엔드 패션으로 재탄생하며 아트와 패션 그리고 디지털의 교차점을 명쾌하게 드러냈다.

 

이 모든 움직임은 과거의 전통 예술이 미래라는 디지털 세대와 만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벨베데레의 용감한 프로젝트 덕에 클림트의 <키스>는 디지털 시대 젊은이들의 소유와 참여, 경험의 중심이 되었다. 벨베데레의 혁신적인 NFT 프로젝트가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이들과 디지털 네이티브 모두를 아우르며 예술의 새로운 장을 연 덕에, <키스>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디서나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콘으로 존재할 것이다.

예술이 춤추는 주조공장 : Atelier des Lumières

빈티지한 19세기 주조공장의 거친 벽돌과 철골이 360도 빛의 바다로 뒤덮일 때,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Atelier des Lumières)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예술의 성소가 된다. 프랑스 파리 11구에 위치한 이 공간은 1835년 산업혁명의 산물인 주조공장으로 지어졌지만 2018년 문화유산 디지털화 전문 기업 컬처스페이스(Culturespaces)의 손끝에서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오래된 벽돌 벽과 높이 솟은 철골 기둥들은 산업 시대의 무게를 간직한 채, 명작의 무대가 된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이 야광처럼 공간을 휘감고 클림트(Gustav Klimt)의 황금빛 패턴이 숨 쉬듯 천천히 춤을 춘다. <가우디: 상상의 건축가(Gaudí: The Architect of the Imaginary)>에서는 파크 구엘, 카사 바탈로,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초현실적인 빛의 도시로 재탄생한다. <이집트 파라오(Egypt of the Pharaohs: From Cheops to Ramses II)>는 고대 문명을 벽과 바닥, 천장 위로 흘려보내며 신화와 역사를 현실로 끌어온다. 2025년 4월 11일부터 8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어린왕자: 몰입형 오디세이(The Little Prince: An Immersive Odyssey)>에서는 생텍쥐페리의 스케치와 문장이 360도 공간을 감싸 시와 그림 사이를 유영하는 우주여행을 만든다. 이곳에서는 빛과 그림자, 음악과 영상이 뒤섞이며 정적인 회화가 관객을 둘러싼 살아있는 환경으로 변주한다. 이 안에서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작품의 한 조각이 된다.

 

컬처스페이스의 아트 디렉터 그레고아 모니에(Grégoire Monnier)와 디렉터 팀은 “디지털 시대에도 예술은 살아 숨 쉰다”고 믿으며 기존 박물관의 고정된 틀을 과감히 깨뜨렸다. 360도 프로젝션과 입체 사운드를 통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삼아 관객의 심장 박동까지도 예술과 동기화하는 새로운 체험을 창조했다. 그 결과 이 혁신적인 접근은 젊은 세대와 관광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SNS에는 “이게 바로 미술관이라니…”라는 감탄이 끊이지 않았고 티켓은 늘 긴 대기 줄과 매진을 기록했다.

 

컬처스페이스는 1990년대부터 프랑스 내 여러 문화유산 공간을 관리하며 문화유산과 디지털 기술의 접목을 선도해 왔다. 루브르 박물관 근처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와 빌라 르장드르(Villa Legrand) 등 역사적 공간도 이들이 운영한다. 그러나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는 그중에서도 가장 혁신적이고 대중적인 프로젝트로, 문화유산이 젊은 세대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 세계에 던졌다.

 

2018년 개장 이래, 이곳은 반 고흐, 클림트, 모네, 르누아르 등 대가들의 작품을 빛과 음악, 영상으로 재해석하는 몰입형 전시를 꾸준히 선보였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공간 전체를 감싸며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는 경험을 제공했고, 클림트의 황금빛 패턴과 섬세한 디테일은 360도 공간에서 예술의 무드를 극대화했다. 모네의 인상주의 빛과 수련,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터치는 전시장을 낭만적인 분위기로 물들였다. 최근에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결합한 현대적인 전시도 시도하며 관객층을 확장해 가고 있다.

 

컬처스페이스의 비전은 명확하다. “문화유산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진화해야 한다.” 과거 산업의 흔적을 품은 이 공간은 빛과 소리로 시간을 움직이고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결과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는 매년 전 세계 젊은 여행자와 예술 팬들이 “꼭 방문해야 할”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전통과 미래, 예술과 기술이 교차하는 이 빛의 성소에서, 미술은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온몸으로 느끼는 살아 있는 경험이 된다.

소유하는 예술, 호흡하는 예술

그렇다면 예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장 유리 진열장 속에 있던 작품이 어느 날 옷장 속 티셔츠나 가방, 혹은 휴대폰 케이스로 변신해 우리 손에 들어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예술은 더 이상 “박물관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거리 위에서, 학교에서, 카페 한구석에서 함께 숨 쉬는 것이 된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팩선(PacSun)과 협업해 고대 로마와 그리스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의류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젊은 세대가 “입는 예술”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티셔츠, 재킷, 양말 등 60여 종의 아이템이 출시되자마자 완판 신화를 썼고 메트로폴리탄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5%나 증가하는 등 대중과 미디어의 반응은 뜨거웠다. PacSun 컬렉션 디렉터 에밀리 워커가 말했듯 이 협업은 “문화적 경험으로서 미술관을 입는 공간으로 재정의한 최초의 시도”였다. 이는 미술관 굿즈가 MZ세대 라이프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순간이었다.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은 아름답게 빛나는 정원과 미니멀한 디자인이 어우러진 공간에서 작품의 미학을 고급스러운 스테이셔너리, 포스터, 홈 데코 굿즈로 확장했다.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된 형태의 굿즈들은 조용한 감상의 행위를 트렌디한 일상의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전시 끝에 만나는 뮤지엄샵이 예술이 생활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통로가 된 셈이다. 또한 베를린 사물의 박물관(Museum der Dinge)은 한층 위트 있는 접근을 내세워 서프라이즈 백(Wundertüte)을 중심으로 한 큐레이션 소품을 선보였다. 엽서, 스테이셔너리, 주방용품에서 간식까지 내장된 이 작은 랜덤 백은 4유로의 매력적인 가격으로 제공되어 전시를 집까지 데려갈 수 있게 만든다.

 

더 과감한 경계 허물기는 네덜란드 반 고흐 미술관과 포켓몬의 콜라보에서 빛났다. 피카츄와 꼬부기 같은 포켓몬 캐릭터들이 반 고흐의 작품으로 들어가며 예술과 대중문화 팬덤이 교차하는 신선한 입문 경로를 만들었다. 출시된 굿즈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24시간 만에 품절됐고 일부 한정판은 eBay에서 수백 달러에 재거래되며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젊은 관객들이 대폭 증가하며 굿즈 매출이 미술관 전체 상품 매출의 40%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예술과 팬덤, 소비가 뒤섞이는 경계 없는 시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이러한 사례들은 미술관 굿즈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 입고, 소유하며, 즐기는 총체적 문화 경험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MUSÉE)가 전통 유물을 현대적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며 문화유산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훌륭하게 구축하는 데 집중했다면, 글로벌 트렌드는 패션·팝컬처·체험형 소비와의 결합을 통해 미술관을 일상의 힙한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는 형태였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의 미니멀 아트 굿즈, Museum der Dinge의 위트 있는 생활 소품, 메트로폴리탄×PacSun의 “입는 예술” 전략, 그리고 반 고흐×포켓몬의 팬덤 결합은 모두 그 방향성을 증명한다. 고요했던 미술관이 개인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무대가 되었다.

PACSUN X MET의 콜라보 의류 © PACSUN
베를린 Museum der Dinge의 뮤지엄샵 © ARMIN HERRMANN, Museum der Dinge

예술이 더 이상 박물관 벽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변화는 그것이 단순히 “밖으로 나오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호흡을 나누고 있다는 점에 있다. 미켈란젤로의 대리석 조각을 피렌체나 마이애미에서, (언젠가) 서울에서 동일한 감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건 원본의 물리적 한계를 깨는 시도이자 문화 접근성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다. 벨베데레의 NFT 실험 역시 단순한 수익화가 아니라 “예술의 소유”라는 개념을 디지털 시대에 맞춰 재정의한 사건이다. 관람객은 수동적 감상자가 아닌, 작품 일부를 소유하고 전파하는 참여자가 된다. 또 몰입이 키워드가 된 아틀리에 데 뤼미에르에서는 관객이 벽과 바닥, 심지어 공기까지 작품의 일부가 된 환경 속에서 예술을 보지 않고 예술 안으로 들어간다. 이는 단지 기술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작품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고자 하는 관객의 욕망이 기술과 만난 결과다.

 

이 변화는 결코 하이테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술관 굿즈나 브랜드 협업이 증명하듯 티셔츠 한 장, 포스터 한 장에도 동일한 힘이 담길 수 있다. MZ세대는 그것을 갖는 순간 예술의 연장선 위에 서고 그 경험은 SNS 피드에서 새로운 맥락을 얻으며 또 다른 관객을 부른다. 결국 예술은 “경험→소유→공유→확산”이라는 순환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문화유산과 예술은 이제 보존의 대상에서 재창조의 재료로 이동했다. 세대·매체·지역을 가로지르는 리믹스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과거를 미래의 언어로 번역하게 된다. 이는 헤리티지의 현대화이자 전 세계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거대한 공동 창작의 장이다. 그렇기에 미래의 박물관과 예술기관은 작품을 소유한 “기관”이 아니라 이야기를 연결하는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 플랫폼은 물리적 장소를 넘어 디지털, 패션, 게임, 팝컬처, 메타버스까지 뻗어갈 것이다. 중요한 건 기술이나 마케팅이 아니라 그 안에 개인의 서사가 스며드는 경험이다. 예술이 살아남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박물관이 “조용한 방”이 아닌 “살아 있는 광장”이 된 시대, 우리는 이미 그 한가운데 서 있다.